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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체... 2008/03/26

니체...

from 2008/03/26 13:30

생애를 통해 기독교에 대하여 가장 파괴적인 공격자였던 니체는 종교적인 가계의 출신이다.

순종적이고 성실하고 섬세한 성격의 니체는, 고독을 좋아하고 예의 범절을 잘 지켰으며 근엄했다. 그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작은 못가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쇼펜하우어 속에서 니체가 본 것은, 생의 부정. 가차없는 자기 부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응시하는 용자의 자세였는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증명을 위한 증명을 한 것이 아니라, 증명의 결과에 참으로 경악했으며, 그것을 정직하고 용감하게 받아들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불행과 절망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계산한 것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점은, 그가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견디어 낸 데에 있다. 니체는 그렇게 생각했다.

니체 특유의 자기 부정, 자기 극복...

삶의 근본을, 의미도 목적도 없는 맹목의 의지로 생각하는 쇼펜하우어는, 생을 부정적으로 보고, 최종적으로는 생으로부터의 해탈을 목표로 하지만, 니체가 취한 것은 의미도 목적도 없는 암흑의 생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하려고 하는 입장이다.

기독교의 신이 없으면, 신의 나라를 목표로 과거에서 미래로 직진하는 직선적인 시간 관념도 있을 수 없다. 그러한 목적론을 거절하고, 어디까지나 이 추악한 우연적인 지상의 생에 충실하려고 하는 니체에 있어서, 시간의 관념이 고대 그리스식의 원환적인 것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종국이 없으면, 시간은 둥근 고리이다. 그러나 그런 시간 속에서 연출되는 것은, 이 추악하고 무의미한, 목적에 의해 구제를 빼앗겨 버린 지상의 생에서, 그것은 영원히 똑같은 형태로 되풀이된다고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만큼 견디기 힘든 것은 없지만, 그것을 확실히 지각한 것이 그의 영겁 회귀설이다. 따라서 그것은 '니힐리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든, 아니, 견디기 힘들면 힘들수록, 그것을 긍정에 의해 돌파하려고 하는 것이 니체의 태도이다. '이것이 생이었떤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이 결단에 의한 돌파, 자기 해방이야말로, 니체가 영겁 회귀라는 말로 표현하려는, 신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유감이다. 이리하여 니힐리즘의 극단적인 형태인 영겁 회귀설은, 동시에 '생의 긍정의 최고 형태'가 된다.

*니힐리즘: 라틴어의 ‘무(無)’를 의미하는 니힐(nihil)이 그 어원으로, 허무주의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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