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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약용과 목민심서 2008/04/02

정약용과 목민심서

from 2008/04/02 14:04

정약용의 아버지는 정재원으로 진주 목사를 지냈고, 어머니는 윤선도의 후손으로 해남 윤씨이다. 정약용의 집안은 남인파의 양반이었지만, 그가 태어날 무렵에는 그다지 권세가 있지는 않았다.

태학에 들어가자 그는 임금인 정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정조가 그의 학문적 자질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정조가 태학으로 '4.7이기론에 있어서 퇴계와 율곡의 이론적 차이'를 답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약용은 많은 학자들이 퇴계의 이론을 지지했던 것과는 달리 율곡의 이론을 지지했는데, 이것이 정조의 마음에 들어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정약용의 학문은 매우 방대하지만, 집약하자면 '수기'와 '치인'의 정신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공자 이래 유학이 표방하는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정약용의 시대에는 사회가 혼탁하고 학문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하여 이렇게 개탄했다.

"공자의 도는 수기와 치인일 뿐이다. 오늘의 학자들이 아침저녁으로 강론하는 것은 다만 이기사칠의 논변이거나 하도락서의 수이거나 태극원회의 설뿐이니, 이러한 것들이 수기에 해당되는지 치인에 해당되는지 모를 일이다."

이 말 속에는 형이상학에 매몰되어 있는 성립학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가 성리학을 도외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성리학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나름대로의 이론을 정립했던 것이다. 다만 이전의 학자들과는 이론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의 세계관을 살펴보자.

정약용은 세계의 궁극적인 시원을 '태극'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성리학에서는 보통 태극을 이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그가 말하는 태극은 무형의 '이'가 아니라 물질적인 실체이다. 그에 따르면 태극은 '양의'를 낳는다. 양의란 하늘과 땅이다. 양의는 다시 사상으로 나뉘어 하늘, 땅, 물, 불을 낳는다. 그리고 사상은 여덟으로 분화된다. 즉, 하늘과 불이 작용하여 새로이 번개와 바람을 낳고, 땅과 물이 작용하여 새로이 산과 연못을 낳는다. 정약용은 이렇게 우주 만물은 태극의 분화작용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여 종래의 음양오행설을 부정했다.

정약용은 이처럼 '이'를 궁극적인 실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이'란 법칙으로서의 이치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우주 만물을 주재하는 절대자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상제'라고 했다. 상제란 고대중국에서부터 내려온 개념인데 정약용은 이를 보다 부연하여 다른 각도로 사용했다. 즉, 그에게서 상제란 곧 초월적인 유일신으로까지 이해되었다.

정약용의 인성론은 이전의 성리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는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성이 인간의 성품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그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실천을 통해 도덕적인 덕목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에 대해 언급하면서 '헛되게 태극이나 공경하고 이를 하늘이라 생각하면 '인'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서 성품이란, 그 자체로서 선한 어떤 것도 아니며, 다만 구체적 대상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이다. 즉, 성품은 곧 '기호'이다. 이러한 주장을 성기호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기호가 있다. 하나는 영지의 기호로서 선을 즐기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도의의 성품이며 도심으로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형구의 기호로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동물도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서 기질의 성품이며, 인심이다.

정약용은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민본주의 정치론을 폈다. 그에 따르면, 군주는 하늘의 명을 대행하는 자이지만, 그 하늘의 명은 한 사람에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덕한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덕을 잃으면 천명이 옮겨져 군주가 바뀌어야 하는데, 덕이 있고 없음은 민심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를 말한다. 만일 군주가 덕을 잃으면 백성의 힘으로 군주를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맹자의 역성 혁명론과 같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은 권력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한다. 그는 태고시절에는 백성만이 있었을 뿐 통치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백성들이 필요에 의해 군주를 추대하고 관직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백성의 뜻에 반하는 군주는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정약용의 정치사상은 맹자의 왕도정치보다 더욱 진보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서양의 사회계약설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정약용은 경제의 근간이 되는 토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제도를 창안하여 '여전제'를 주장했따. 여란 약 30호로 이루어진 마을을 뜻하는데, 여기서 토지는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 경작하여, 수확량을 일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는 공동 영농 제도이다.

목민심서는 지방의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을 조목을 들어 자세하고도 예리하게 지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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