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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트겐슈타인 2008/03/31

비트겐슈타인

from 2008/03/31 14:58

20세기 영미 철학의 전개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이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만은 분명하며, 철학적 저작의 서술 양식이나 삶의 행로에 있어서도 여타의 철학자들과는 구분되는 매우 독보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유태계 철강 부호였던 아버지 칼 비트겐슈타인과 어머니 레오폴디네 사이의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일종의 재벌 2세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04년에서 1905년 사이에 히틀러가 린츠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학년이 달랐고, 서로 접촉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17세가 되던 1906년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그 기술 전문대학으로 진학하여 기계 공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2년의 학업을 마친 후,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 대학에서 항공 공학을 전공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요소는 그의 자발적인 선택보다 아버지의 강압이나 아버지에 대한 의무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 19세가 되던 해, 영국으로 건너온 루드비히는 비행기 엔진이나 프로펠러의 설계에 대한 연구에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수학의 기초'에 관한 러셀과 프레게의 책을 읽게 되고, 점차 수학의 기초론, 수리 철학, 논리학 등으로 관심을 전환하게 된다. 1911년 여름, 그는 독일의 예나 대학에 있던 프레게를 찾아갔다. 그리고 프레게는 케임브리지에 있는 러셀에게 찾아가 볼 것을 권유하였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완벽한 천재의 사례라고 평가하였다. 몇 번의 굴곡을 거친 후에, 1922년 이후 이들의 인간적인 관계는 단절되었다.

1946년에는 그 유명한 포퍼와의 부지깽이 사건이 있었다. 1946년 10월, 비트겐슈타인이 회장으로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 도덕 과학 클럽에 포퍼가 세미나 발표자로 초청이 되었다. 포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가 실재한다'는 포퍼와 '철학적 문제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며, 비트겐슈타인이 포퍼에게 시뻘건 부지깽이를 들어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러셀의 제지를 받은 비트겐슈타인이 도망치듯 강연장을 빠져나갔다는 것이 이른바 '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그 날 참석한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내용이 약간씩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날 발표의 내용이 망므에 들지 않았던 비트겐슈타인이 '도덕적 규범의 예를 하나 들어보라'고 질문하였고, 포퍼는 부지깽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비트겐슈타인을 향하여 '초청 연사를 부지깽이로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응수했다는 것이다. 이에 격분한 비트겐슈타인이 손에 들고 있던 부지깽이를 내팽개치며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 사건의 대략적인 전모이다.

1951년 비트겐슈타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돌봐 주던 의사, 베반 박사의 집에서 "멋진 삶을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Tell them I've had a wonderful life.)"는 말을 남기고 6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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